히브리어 신문은 독자들에게 정기적으로 뉴스를 제공하고 현대 생활에 필요한 어휘를 접할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1913년 하이파에 세울 예정이던 테크니온에서 독일어로 가르치는 방안을 둘러싸고 별도의 공개 논쟁이 벌어져 ‘언어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시위 끝에 히브리어가 이 기관의 주요 교육 언어로 채택되었습니다.
신문이 히브리어를 시사 언어로 만들다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는 1884년 예루살렘에서 주간지 하체비를 창간했습니다. 이 신문은 시간이 지나며 여러 형태로 발행되었고 1908년에는 일간지가 되었습니다. 이후에는 하오르라는 이름으로 발행되었다고 이스라엘 문화 사전은 기록합니다. 신문은 국내외 사건과 문학, 언어를 다뤘습니다. 벤 예후다는 지면에 어휘와 사전 자료를 실어 독자들에게 실제로 쓸 수 있는 표현을 제공하고 히브리어를 꾸준히 읽을 이유를 마련했습니다.
이 신문은 언어 운동을 일상적인 공공 정보와 연결했습니다. 독자들은 기사와 논평, 번역 문학을 통해 히브리어를 접했고, 신문은 가정과 교실을 넘어 표현을 퍼뜨렸습니다. 벤 예후다의 언론 활동은 더 폭넓은 히브리어 언론의 일부였으며, 히브리어 읽을거리를 제공한 유일한 매체는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문화 사전』의 하체비·하오르 항목은 신문의 발행 형태 변화와 언어 목표를 설명합니다.
1913년 테크니온을 둘러싼 논쟁
테크니온의 초석은 1912년 4월 11일 하이파에 놓였습니다. 이후 이사회는 독일어를 교육 언어로 정했습니다. 힐프스페라인 데어 도이첸 유덴과 관련된 독일계 유대인 후원자들이 이 기관을 지원했고, 독일어는 기술 교육의 주요 언어이기도 했습니다. 히브리어 지지자들은 유대 기술대학이라면 히브리어로 가르쳐 과학과 전문직 분야에서 히브리어가 쓰일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반대했습니다.
논쟁은 언어 전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교사와 학생들이 항의했고 히브리어 교육자들도 이 문제를 중심으로 조직되었습니다. 1914년 1월 테크니온 이사회는 결정을 번복하고 히브리어를 주요 교육 언어로 선택했습니다. 테크니온 자체의 개교는 1924년까지 미뤄졌으므로, 이 결정은 그곳에서 정규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내려졌습니다. 테크니온의 역사에는 초석을 놓은 일과 시위, 결정 번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적 생활로 향한 두 갈래 길
신문은 히브리어를 뉴스와 토론의 매체로 만들었고, 테크니온 논쟁은 고등교육에서 히브리어가 차지할 자리를 공론화했습니다. 히브리어 아카데미의 기관사에 따르면 언어위원회는 자체 기록을 내기 전에 벤 예후다의 신문에 새 용어를 발표했습니다. 인쇄물과 교육은 함께 히브리어가 공공기관과 기술 분야, 일상 대화에서 기능하도록 도왔습니다.
어휘와 언어위원회의 활동 또는 학교와 가정의 역할을 이어서 읽어 보세요.